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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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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연락이 없는 ○○이를 생각하며……
지독한 몸살로 며칠째 고생하고 있습니다. 온몸이 으슬으슬하고 밤이면 편도선이 붓고 콧속이 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고통은 해마다 겨울이 되면, 아니 정확히 말해 수능 시험 결과가 나오고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올 즈음이면 어김없이 치르게 되는 연례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 하나하나의 결과에 온통 신경이 다 가 있어서, 글쎄요 밥을 먹는다든가 잠을 자는 등의 일상적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오는 일종의 직업병일 겁니다. 특히 이맘때면 학원마다 서울대와 연·고대에 몇 명을 합격시켰는지 열심히 홍보하고, 심지어 학교에서도 교문에 현수막을 크게 걸어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고3 학생들을 가르치는지라 많은 제자들이 합격 소식을 전해옵니다. 다른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로, 이른 시간이든 늦은 시간이든 상관없이 연달아 울려 대는 핸드폰 소리에 정말 즐거운 비명을 질러 보기도 합니다. 특히 명문대에 합격한 녀석들은 활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직접 학원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천하를 얻은 듯한 녀석들의 몸짓과 표정에 저도 기분이 좋아져 녀석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학에서 마음껏 꿈을 펼쳐 보라고 격려하기도 하지요. 학원 직원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우리 학원도 크게 현수막을 내걸거나, 아니면 학원 정문에 녀석들의 이름과 합격한 대학을 크게 써서 붙여놓자고 성화가 대단합니다. 혹은 신문의 전단지에 ‘○○대 ○○명’ 하는 식으로 광고를 하자고 건의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명문대에 진학한 제자들이 수없이 많았고 올해에도 역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지만 감히 그러한 일을 할 만한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제가 가르쳤던 제자들 중에서는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한 녀석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대학에 진학한 녀석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올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결과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몇몇 녀석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유난히 살가운 성격으로 항상 밝게 웃으며 공부했던 ○○이. 시험 전날까지 찾아와 질문을 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학원문을 나섰던 ○○이.종강하는 날, “선생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하고 수줍게 초콜릿을 건넸던 ○○이.시험 전날, 너무 떨린다며 밤 12시가 지나서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 ○○이.시험 당일 아침에 수험장으로 향하며,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날 것 같아요.”하고 격려해 달라며 전화를 했던 ○○이.”
그런데……. 이 녀석들에게서 아직까지도 연락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몇몇 녀석들은 풀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하기도 했지요.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열심히 가르쳐 주셨는데 시험을 너무 못 봤어요. 선생님 뵐 면목이 없어요.” “선생님 저 어떡해요. 재수해야 할 것 같아요.”
녀석들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정말 가슴이 에리는 일입니다. 특히 시험을 못봤는데도 자기 자신이 못해서 그렇다고, 그래서 너무 죄송하다고 말하는 녀석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왈칵 눈물이 나올 정도로 자괴감을 느낍니다. 고백하자면, 그러한 심정에서 벗어나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보기도 했었습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모두 시험을 잘 볼 수는 없다. 이 세상에 그런 강사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저 열심히 가르쳤으면 되는 것이다. 정말 내공이 쌓인 강사라면, 그런 감정이야 간단하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면서 머리를 흔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녀석들의 연락을 계속 기다릴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녀석들은 흔히 말하는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해서, 혹은 목표했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서, 혹은 재수를 하게 돼서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다른 학원, 다른 선생님에게서 수업을 받았으면 훨씬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저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녀석들에게 어떤 위로와 변명의 말을 할 수 있을는지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녀석들의 핸드폰이나 집 전화 번호를 누르고 싶지만, 정말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녀석들에게 점잖게 위로를 하거나, 어줍잖은 조언을 해주는 것은 제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을 합리화하려는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역시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저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녀석들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 설사 저에게 서운한 말을 하든 원망을 하든, 그저 그렇게 녀석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대 ○○명 합격’이라는 현수막? 전단지 광고? 제가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의 꿈이 전부 이루어지는 날, 그제서야 저는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모든 녀석들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걸어놓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닐듯하군요. 내년에도 여전히 제 제자들 중에는 시험을 그르치는 녀석들이 생겨날 것이고,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 우울해 할 녀석들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꼭 이루고 싶은 꿈으로 간직하며 열심히 강의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이제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됩니다. 가슴 에리는 안타까움은 잠시 접어두고 새로운 한 해를 새로운 녀석들과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 녀석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내년에 대학에 들어갈 녀석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자기의 분야에서 활짝 꽃을 피울 녀석들의 이름을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우리의 꿈

교실풍경
청록빛 꿈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저도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왔습니다.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고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 온 사람들도 있고, 더러는 잠깐 만났다 이내 헤어져 기억조차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책이나 신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고 제 가슴 속에서 ‘존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자그마한 체구에 안경을 쓰시고, 국어를 가르쳐 주셨던 김화영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에 가장 먼저 저희 반 교실에 와 계셨습니다. 선생님들은 학교에 출근하면 교무실에 계시다가 학급 조회를 위해 잠깐 담임을 맡은 반 교실에 들르시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김화영 선생님께서는 교무실에서 교무 회의가 열리는 시간이 될 때까지 저희 반 교실에 계시면서 등교하는 저희들 하나하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아침밥은 먹고 왔는지, 숙제는 잊지 않고 해왔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70명의 학생들 모두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등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국어 수업 시간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어쩌면 그렇게 큰 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또랑또랑 큰 소리로 어려운 내용도 명쾌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수업이 끝날 때 즈음이면 선생님의 목소리는 늘 쉬어 있었고 시력이 나빠 맨 앞자리에 앉았던 저는 선생님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땀방울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주번 일을 할 때, 학급 일지를 검사 받기 위해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 뵈면 선생님께서는 늘 중학교 1학년 교과서를 보고 계셨습니다. 선생님의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도 공부를 하나?’ 하고 참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이 ‘교재 연구’였다는 것은 아주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방과 후 청소 당번들이 교실 청소를 할 때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교실에 오셨습니다. 청소 검사를 하러 오신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들과 함께 책상을 옮기고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하셨습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직도 기억 납니다. 방학 중에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부모님께 자랑을 하던 일이(물론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께서는 저뿐만 아니라 저희 반 모두에게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밤을 꼬박 새워가며 답장을 쓰던 일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몇 명의 친구들과 선생님을 찾아가 뵌 적이 있습니다.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기 때문에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물어 물어 힘들게 찾아갔었습니다. 저희들은 사실 선생님을 찾아가는 동안 걱정을 했습니다. ‘이미 3년이 지났는데, 이름은 그렇다치고 혹시 얼굴을 알아보실 수 있을까? 만일 몰라보시면 어떡하지…….’ 선생님을 뵙는 순간, 선생님은 저희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시며 쉰 목소리로(그 학교에서도 선생님은 변함없이 큰 목소리로 수업을 하셨던 겁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지형이는 중1 때 출석 번호가 41번으로 꽤 큰 편이었는데, 그 동안 키가 별로 자라지 않았구나, 녀석” …….선생님께서는 우리들 모두의 이름은 물론, 출석 번호까지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아, 선생님, 선생님……! 중1 어느 날 선생님은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지형이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니?” “파란색과 녹색이요.” “그래, 지형이는 이 다음에 언론인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지? 이제부터 네 꿈을 ‘청록빛 꿈’이라고 하자. 어때, 너의 ‘청록빛 꿈’, 꼭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거지?” …….
그때의 중1짜리 꼬마는 선생님과 약속했던 ‘청록빛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후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는 언론학을 전공하면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저는 지금 ‘학원 강사’입니다. 대학원 논문을 준비할 때 우연히 시작해서 지금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학원 강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동안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로부터 받은 관심과 성원을 생각해 보면, 터무니 없는 불평이겠습니다만 학원 강사로 보낸 지난 세월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기도 합니다. 제 자신을 돌아 볼 여유도 없었고 가르치는 일 말고는 변변하게 해 놓은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과 약속했던, 소중한 ‘청록빛 꿈’을 까맣게 잊고 지내왔던 세월이었습니다. 국어국문학과 언론학을 전공한 것이 국어 강사로서 큰 자산이 되었다고 자부해 보기도 했지만, ‘학원 강사’는 어쩔 수 없는 ‘사교육 종사자’일 뿐이라는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다른 일에 한눈 팔지 않고 강의에 충실했던 것은, 어쩌면 ‘사교육 종사자’라는 ‘원죄’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싸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잊지 않고 간직해 온 믿음 하나가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김화영 선생님’ 같아야 한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님처럼 늘 교재 연구를 해야 하고, 선생님처럼 땀 흘리며 열정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그래서 목이 쉬어야 하고, 선생님처럼 학생 한 명, 한 명을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하고…….」
이러한 믿음을 소중히 지켜나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왔습니다. 물론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결코 김화영 선생님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혹여 제가 썩 괜찮은 선생님이라는 분에 넘친 평가를 만의 하나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김화영 선생님 흉내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지금 다시 한 번 ‘청록빛 꿈’을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과 약속했던 ‘청록빛 꿈’을 저는 이루지 못했지만,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소중한 ‘청록빛 꿈’이 결실을 맺는 데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비록 ‘사교육 종사자’의 어설픈 ‘선생님 흉내내기’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땀을 흘리며 열정을 쏟는다면, 정말 큰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떠올려 봅니다. 제게 선물로 주셨던 책의 맨 뒷장에 선생님께서 써 주셨던 말씀입니다.
「지형에게 참 슬기로움이, 참 지혜로움이, 참 아름다움이……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1978. 7. 21. – 김화영 선생님」
감히 약속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주셨던 땀과 눈물, 열정과 사랑의 의미를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열심히 ‘흉내’내어 보겠습니다.